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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속의 문 앞에서 ‘형법 제53조’는 마지막 열쇠

작성자 BK파트너스 작성일 2026-07-24 조회수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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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속의 문 앞에서 ‘형법 제53조’는 마지막 열쇠

'1심'선고만으로 재판 끝난 것 아냐  작량감경은 삶의 무게를 다시 헤아려
변하지 않은 사건도 결과는 달라져 인생을 어떻게 보여주느냐가 '승부'

1심에서 무거운 형을 선고받은 순간, 의뢰인과 그 가족은 흔히 “더는 내세울 새로운 사정이 없으니 끝났다”고 받아들입니다.

그러나 본 변호인이 30년에 걸쳐 형사 항소심을 수행하며 거듭 확인한 것은 ‘새로운 사정이 없다’는 것과 ‘더 다룰 것이 없다’는 것은 결코 같은 말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우리 형법이 법관의 손에 쥐어준 정상참작 감경, 이른바 작량감경(형법 제53조)이 바로 그 지점에서 마지막 열쇠가 됩니다.
법률은 죄마다 법정형이라는 틀을 정해두지만, 그 틀은 무수한 사건을 아우르기 위한 일반적·추상적 기준일 뿐입니다. 세상에 똑같은 사건은 없고, 똑같은 인생도 없습니다. 법정형만으로는 개별 피고인이 걸어온 삶의 굴곡과 범행에 이른 구체적 경위를 온전히 참작할 수 없습니다.
바로 그 간극을 메우기 위해 우리 형법은 “범죄의 정상에 참작할 만한 사유가 있는 경우에는 그 형을 감경할 수 있다”고 정하여, 법관에게 구체적 타당성을 도모할 재량을 부여하였습니다(형법 제53조). 이것이 작량감경 제도의 도입 취지입니다. 작량감경의 효과는 상징적 선처에 그치지 않습니다. 유기징역을 감경하면 그 처단형의 상한과 하한이 모두 2분의 1로 내려가므로(형법 제55조 제1항 제3호),
작량감경 하나로 형의 무게가 절반 가까이 줄어드는 결과도 가능합니다. 나아가 이렇게 낮아진 처단형을 바탕으로 선고형이 3년 이하의 범위에 들어오면, 그 형에 대해 집행유예까지 선고받을 수 있습니다(형법 제62조 제1항).
즉 작량감경은 형량의 상한 자체를 끌어내리고 때로는 실형과 집행유예의 경계까지 넘게 하는 실질적 무기입니다.

문제는 이 무기를 재판부가 꺼내 들 명분을 변호인이 어떻게 만들어내느냐에 있습니다.
항소심에서 가장 먼저 마주하는 벽은 이른바 ‘1심 존중’의 원칙입니다.
제1심과 비교하여 양형의 조건에 변화가 없고 그 양형이 재량의 합리적 범위를 벗어나지 않는다면, 항소심은 이를 존중함이 타당하다는 것입니다(대법원 2015. 7. 23. 선고 2015도3260 전원합의체 판결). 준비 없는 양형부당 주장이 번번이 좌초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러나 존중의 대상은 어디까지나 ‘1심이 이미 손에 쥐고 저울에 올렸던 사정’입니다. 저울에 오른 적조차 없는 사정,
1심 기록 어디에도 드러나지 않았던 한 사람의 삶은 ‘새로 조명’해야 할 대상이 됩니다. 많은 분들이 오해하는 지점이 있습니다. 항소심에서 형을 바꾸려면 1심 이후에 무언가 극적인 사건이 새로 일어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반드시 그럴 필요는 없습니다.

사정 자체가 새로 발생하지 않았더라도, 1심에서는 조서 몇 줄로 뭉뚱그려졌을 뿐 재판부가 그 무게를 실감하지 못했던 한 사람의 삶의 궤적을 항소심에서 비로소 온전히 현출시킨다면,
그것만으로도 재판부는 작량감경의 명분을 손에 쥐게 됩니다. 변호인의 진짜 역할은 ‘없던 사정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있었으나 보이지 않았던 인생을 보이게 만드는 것’입니다.


최근 본 변호인이 수행한 사건의 의뢰인은 1심 이후 합의도, 공탁도, 별다른 사정변경도 전혀 없는 상태였습니다. 누가 보아도 “항소심에서 바뀔 것이 없다”고 단정할 국면이었습니다. 그러나 본 변호인은 1심이 미처 저울에 올리지 못한 것, 곧 의뢰인이 걸어온 삶의 굴곡 그 자체에 집중하였습니다.
의뢰인이 어떤 환경에서 자라 어떤 시련을 견뎌왔는지, 어떤 경위와 절박함 속에서 이 사건 범행에 이르게 되었는지, 막연한 호소가 아니라 구체적이고 객관적인 자료로 재구성하여 재판부 앞에 정면으로 펼쳐 보였습니다. 그 결과 항소심은 1심 이후 사정 변경이 전혀 없었음에도 새로이 드러난 정상을 참작하여 형법 제53조의 작량감경을 적용하였고, 의뢰인의 형기는 무려 절반 가까이 감경되었으며,
재판장은 의뢰인에게 남은 형기를 잘 마치고 새로운 삶을 다시 시작하면 된다는 격려까지 해주었습니다. 항소심에서 ‘새로 드러낸 의뢰인의 인생’이 저울을 움직인 것입니다. 바뀐 것이 없다는 상황이 누구에게는 체념의 이유가 되고 누구에게는 감형의 문이 됩니다.

그 차이는 결국 한 사람의 삶을 재판부의 저울 위에 얼마나 온전히 올려놓았는가에 달려있습니다. 법정형이라는 틀은 결코 한 사람의 인생 전부를 담지 못하며,
바로 그 한계를 메우라고 형법은 법관에게 작량감경이라는 재량을 남겨두었습니다. 부디 1심의 선고에, 그리고 ‘변한 것이 없다’는 절망에 미리 무릎 꿇지 마십시오. 아직 저울에 오르지 못한 삶이 남아있는 한, 항소심의 문은 여전히 열려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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