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홍기 변호사가 짚는 성범죄 초기 대응, 경찰 연락을 받았다면
작성자 BK파트너스 | 작성일 2026-09-04 | 조회수 5
백홍기 변호사가 짚는 성범죄 초기 대응, 경찰 연락을 받았다면
대전지역전속법률사무소 BK파트너스 대표 백홍기 변호사
성범죄 사건은 대체로 한 통의 전화에서 시작된다. 발신자는 경찰관이고, 내용은 간단하다. 고소가 접수되었으니 조사를 받으러 나오라는 것이다. 다수의 성범죄 사건을 직접 다뤄 온 백홍기 변호사의 경험에 비추어 보면, 이 통화에서 사건의 방향이 절반쯤 결정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아무 준비 없이 출석해 4, 5시간을 진술하고 나온 뒤에야 변호인을 찾는 분들이 대부분이고, 그때는 이미 되돌리기 어려운 기록이 만들어져 있다. 오늘은 그 첫 통화 이후 반드시 해야 할 일과 절대 하지 말아야 할 일을 정리한다.
■ 성범죄 수사는 다른 사건과 구조가 다르다
성범죄는 물적 증거가 희박하고 진술이 사실상 유일한 증거인 경우가 많다. 그래서 법원은 피해자 진술의 일관성, 구체성, 허위 진술의 동기 유무를 중심으로 신빙성을 판단하고, 그 판단이 사실상 유·무죄를 결정한다. 반대로 말하면, 피의자 측이 다툴 지점도 진술의 모순과 객관적 정황의 불일치뿐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그 다툼의 재료는 처음 한 번의 진술로 대부분 고정된다. 초기 진술이 사건의 골격이 되고, 이후의 해명은 '번복'으로 평가된다는 점을 먼저 이해해야 한다.
■ 먼저 확인할 것은 죄명과 고소사실이다
출석 요구를 받았다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자신이 무엇으로 조사받는지 확인하는 것이다. 강제추행인지 준강간인지, 카메라등이용촬영인지 촬영물이용협박인지에 따라 쟁점과 방어 논리가 완전히 달라진다. 특히 일시와 장소가 특정되지 않은 채 접수된 고소도 흔하고, 고소취지와 고소사실의 범위가 서로 일치하지 않는 사건도 실무에서 드물지 않다. 필자가 초기 상담에서 가장 먼저 점검하는 것도 바로 이 부분이다. 조사 전에 사건번호와 담당 수사관, 죄명을 확인하고, 필요하면 변호인을 통해 정보공개청구 등의 방법으로 고소장과 죄명, 처분 관련 자료의 열람·등사를 시도하는 것이 정석이다. 무엇을 다투는지 모르는 상태에서 하는 진술은 진술이 아니라 추측이며, 추측은 반드시 모순을 남긴다.
■ 유도심문에 끌려가지 않아야 한다
조사실에서 가장 위험한 순간은 수사관이 답변의 방향을 미리 정해 놓고 질문할 때다. 실무에서는 '그런 마음이 조금은 있었던 것 아닌가', '전혀 아니라고는 못 하겠죠'와 같은 형태의 질문이 등장하고, 여기에 무심코 "예"라고 답한 한 줄이 고의의 자백으로 기록된다. 법원도 유도질문과 면담의 부적절성이 확인되면 그 진술의 증거가치를 낮게 평가하고 있고, 조사자의 반복 질문과 지적에 따라 진술이 번복된 사정을 신빙성 부정의 근거로 삼은 사례도 있다. 다만 이는 사후에 법정에서 다투는 논리일 뿐이다. 애초에 그런 답변을 남기지 않는 것이 비교할 수 없이 유리하다. 기억이 없으면 없다고, 확인이 필요하면 확인 후 답하겠다고 말하는 것이 정확한 진술이다. 진술을 거부할 권리는 고지 대상인 권리이며(형사소송법 제244조의3), 이를 행사하는 것은 불이익이 아니라 절차상 보장된 선택이다.
■ 변호인 없이 조사실에 들어가지 않는다
형사소송법은 정당한 사유가 없는 한 변호인을 피의자신문에 참여하게 하여야 한다고 규정한다(형사소송법 제243조의2 제1항). 이는 단순한 편의 규정이 아니다. 피의자가 변호인 참여를 명백히 원한다고 표시하였음에도 정당한 사유 없이 변호인을 배제한 채 작성된 피의자신문조서는 적법한 절차와 방식에 위반된 증거이자 위법수집증거로서 증거능력이 부정된다. 참여 의사를 표시하였는지 여부가 다투어진 사건에서 그 입증책임을 검사에게 돌린 판단도 있다. 그래서 필자는 상담 없이, 그리고 변호인 참여 신청 없이 조사실에 들어가는 일만은 피하라고 조언한다. 조사에 앞서 변호인을 선임하고 참여를 신청하되, 신청 사실과 그에 대한 수사기관의 답변은 반드시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 조사 과정에서 조력이 필요한 사정, 심야조사 여부, 조사 시간의 상당성 역시 이후 조서의 신뢰성 판단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다.
■ 흔히 저지르는 다섯 가지 실수
첫째, 상대방에게 직접 연락해 합의를 시도하는 것이다. 이는 회유·압박으로 평가되어 별건이 추가되거나 양형에서 치명적으로 작용한다. 둘째, 대화 내용이나 사진을 삭제하는 것이다. 유리한 자료까지 함께 사라지고, 삭제 자체가 은폐 정황으로 읽힌다. 셋째, 사실관계를 유리하게 각색하는 것이다. 객관적 자료 한 장으로 무너지고, 그 순간 나머지 진술 전체의 신용이 함께 무너진다. 넷째, 무고로 맞고소하겠다며 감정적으로 대응하는 것이다. 무고죄는 허위성의 증명이 엄격하고, 오히려 방어 자원을 소모시킨다. 다섯째, 반의사불벌 여부와 처벌불원의 의미를 오해하는 것이다. 처벌불원 의사표시와 그 철회의 효력은 형벌권의 존부에 관한 소송조건 문제로서 엄격하게 심리되며, 그 절차적 의미를 모른 채 작성된 서면은 아무 효력을 갖지 못한다.
■ 지금 해야 할 일은 침묵과 정리다
첫 연락을 받았다면 출석 일정은 조정할 수 있다고 답하고, 그 사이에 할 일을 하면 된다. 시간 순으로 사실관계를 작성하고, 대화 내역과 결제·교통·출입 기록, 목격자를 확보하고, 죄명과 고소사실을 확인한 다음 진술의 범위를 정하는 것이다. 성범죄 사건에서 방어의 성패는 법정이 아니라 첫 조사실에서 갈린다. 백홍기 변호사는 초기 대응 하나로 결론이 달라지는 장면을 반복해서 보았다. 억울함은 크게 말할수록 흩어지고, 기록으로 정리할수록 힘을 얻는다. 이미 출석 요구를 받았다면 진술 전에 반드시 변호인과 사건을 검토하고, 아직 그 단계가 아니라면 위 원칙만 지켜도 대부분의 위험은 줄일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