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스피싱 말단 가담자의 미필적 고의는 어디까지 인정되는가 - 백홍기 변호사의 조직범죄 실무
작성자 BK파트너스 | 작성일 2026-09-16 | 조회수 19
보이스피싱 말단 가담자의 미필적 고의는 어디까지 인정되는가 - 백홍기 변호사의 조직범죄 실무
현금수거책 사건의 법정에서 가장 자주 들리는 말은 "그 정도면 알 수 있었을 것이다"라는 문장이다. 필자는 이 문장이 유죄의 근거로 반복되는 현상을 오래 지켜보았다. 대출금 회수라거나 투자금 전달이라는 설명을 듣고 현금을 받아 옮긴 사람이, 업무가 이례적이라는 사정만으로 사기의 고의를 인정받는 구조가 과연 형사법의 고의 개념에 부합하는지는 따져 볼 문제다. 오늘은 말단 가담자의 미필적 고의에 관한 판단 기준과 그 적용의 타당성을 검토한다.
■ 미필적 고의의 요건은 인식과 용인이라는 두 겹이다
미필적 고의는 결과발생의 가능성에 대한 인식만으로 성립하지 않는다. 판례는 결과발생의 가능성에 대한 인식이 있음은 물론 나아가 그 결과발생을 용인하는 내심의 의사가 있어야 한다고 일관하여 판시한다(대법원 1985. 6. 25. 선고 85도660 판결, 대법원 2004. 2. 27. 선고 2003도7507 판결). 나아가 고의의 일종인 미필적 고의는 중대한 과실과는 달리 범죄사실이 발생할 위험을 용인하는 내심의 의사를 요하고, 그 용인 여부는 외부에 나타난 행위의 형태와 상황을 기초로 행위자의 입장에서 심리상태를 추인하여야 한다(대법원 2017. 1. 12. 선고 2016도15470 판결). 학설상으로도 미필적 고의의 의적 요소인 감수의사, 즉 구성요건 실현을 '어쩔 수 없다'고 받아들이는 정서적 태도가 인식 있는 과실과의 분수령이라는 점은 널리 인정된다. 결국 인식 있는 과실과 미필적 고의는 이웃한 개념이지만 그 구별이 곧 과실과 고의의 차이를 드러낸다.
여기서 두 겹의 요건이 도출된다. 첫째는 무엇을 인식하였는가라는 대상의 문제이고, 둘째는 그 인식된 위험을 용인하였는가라는 태도의 문제다. 필자가 보기에 실무의 취약점은 두 번째 요건이 첫 번째 요건의 정도로 대체되는 지점에 있다. 의심할 만한 정황이 많다는 사정은 인식의 가능성을 높이는 자료일 뿐이고, 그 자체가 용인의 의사를 증명하지는 않는다.
■ 인식의 대상은 '이례성'이 아니라 '범행의 일부일 가능성'이다
대법원은 현금수거책의 공모사실이나 범의를 판단하는 종합적 고려요소를 제시하였다. 공범과의 의사연락 내용과 연락수단, 업무를 맡긴 사람을 직접 대면하였는지, 근로계약서 등이 정상적으로 작성되었는지, 업무를 담당하게 된 경위와 과정이 통상적이라고 볼 수 있는지, 피해자에게 보인 언동과 사용한 문서, 수거 횟수와 규모, 제3자의 개인정보 사용 여부, 보수의 정도와 지급방식, 피고인의 나이·지능·경력 등이 그것이다(대법원 2024. 12. 12. 선고 2024도10141 판결). 이 기준은 정확하고 유용하다. 문제는 이 요소들이 결론을 향한 체크리스트로 쓰일 때 발생한다.
위 고려요소는 대부분 업무 수행 방식의 비정상성을 지시하는 지표다. 그러나 사기죄의 고의에서 인식의 대상은 업무가 이례적이라는 사정이 아니라, 자신의 행위가 타인을 기망하여 재물을 편취하는 범행의 일부라는 사실이다. 채용 절차가 허술하고 보수가 높으며 현금을 노상에서 주고받는다는 사정은 그 업무가 탈세, 불법 대부중개, 자금세탁, 나아가 보이스피싱까지 여러 위법의 스펙트럼 중 어디에 놓일 수 있음을 알려 줄 뿐이다. 실제로 자금세탁인 줄 알았다는 진술이 유죄의 근거로 쓰인 사례가 있으나(대구지방법원 2017. 10. 19. 선고 2017노2793 판결), 인식의 대상을 어느 범죄까지 특정하여야 하는지는 여전히 정밀한 판단을 요한다. 무죄가 선고된 사건들은 대체로 이 지점을 파고들었다. 정상적인 수금 업무라고 믿었다는 사정, 보이스피싱을 경험하지 못한 일반인으로서 그 업무 내용이 보이스피싱의 일반적 범행형태라는 사실을 곧바로 알 수 있었다거나 상당한 의심을 할 수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는 사정이 결론을 갈랐다(의정부지방법원 2022. 8. 26. 선고 2021고단3308 등 판결, 수원지방법원 안산지원 2022. 5. 31. 선고 2021고단4605 판결).
■ '알 수 있었음'과 '용인'은 혼재되어서는 안 된다
필자가 가장 우려하는 것은 과실적 판단과 고의적 판단의 혼재다. 판결문에는 "의심할 수 있었음에도 애써 외면하였다"는 표현이 자주 등장한다. 그런데 외면은 주의의무 위반의 서술이고, 용인은 결과를 감수하는 의사의 서술이다. 하급심 중에는 미필적 고의를 인정하려면 불법일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인식하였다는 사정과 그렇게 인식하고서도 확인하지 않은 채 '불법이어도 어쩔 수 없다'는 용인 의사 아래 나아갔다고 평가할 수 있을 만큼 나태하였다는 사정이 각각 인정되어야 한다고 설시한 예가 있다(대구지방법원 2022. 12. 9. 선고 2022고단1589 판결). 요건을 둘로 나누어 각각 증명을 요구한 태도는 정당하다.
같은 취지에서, 형사법에서 과실과 고의의 책임은 엄격히 구별되므로 사기 범행을 의심할 만한 계기가 몇 차례 있었다는 사정만으로 곧바로 미필적 고의를 추단하여서는 아니 되고, 만약 그렇게 한다면 과실 또는 중과실만으로 고의를 인정하는 결과가 된다는 판시도 축적되고 있다(수원고등법원 2026. 2. 11. 선고 2024노1078 판결). 미필적 고의의 존재에 대한 입증책임이 검사에게 있다는 원칙도 되풀이 확인된다(서울중앙지방법원 2025. 10. 15. 선고 2025고정611 판결). 단순히 인식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것에 불과한 경우에는 중과실이 있다고 보더라도 고의로 인정할 수 없다는 판단 역시 같은 맥락에 있다(인천지방법원 2020. 8. 20. 선고 2020노138 판결).
■ 정보 차단 구조 속의 지위를 심리에 반영해야 한다
보이스피싱 조직은 총책, 관리책, 모집책, 유인책, 수거책으로 나뉜 점조직으로 운영되며, 하위 조직원은 상위 조직원의 실체를 알지 못하도록 설계된다. 여기서 간과되는 사실이 있다. 현금수거책은 조직의 도구이면서 동시에 조직의 기망 대상이라는 점이다. 조직은 회사 사이트, 위조된 계약서, 담당자 직함, 업무 매뉴얼을 동원하여 가담자에게 정상적인 근로라는 외관을 제공한다. 대법원도 최종 범행 직후 경찰의 연락을 받자마자 스스로 출석하여 보유 현금을 반환한 사정 등을 근거로, 그 이전까지는 자신의 행위가 피해금을 수거·취합하는 과정의 일부임을 미필적으로라도 알지 못하였던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한 바 있다(대법원 2025. 3. 13. 선고 2024도20664 판결).
그러므로 판단의 기준시점은 사후가 아니라 각 수거행위 시점이어야 한다. 조직의 구조와 수법이 판결문에 정연하게 서술되어 있다는 사정은 법원이 사후에 확보한 정보이고, 피고인이 당시 보유한 정보가 아니다. 결과의 중대성에서 거꾸로 고의를 끌어내는 추론은 경계해야 한다. 지능이 경계선 수준이거나 사회경험이 부족한 피고인에게 일반인의 관점을 그대로 적용하여 공모를 추정하는 것은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다는 판시도 이러한 문제의식을 보여 준다(인천지방법원 2025. 12. 11. 선고 2025고합212, 674 판결). 문서 사용의 태양은 유용한 감별 자료다. 금융감독원장 명의의 공문서나 금융기관 명의의 사문서를 스스로 출력하여 피해자에게 교부하고, 타인의 성명과 주민등록번호로 100만 원씩 쪼개어 무통장 송금한 사안에서 고의가 인정된 것은(대법원 2024. 12. 12. 선고 2024도10141 판결) 그 행위 자체가 기망의 실행에 직접 결합되기 때문이다. 반대로 지시받은 장소에서 현금을 받아 지정된 사람에게 넘긴 것에 그친 사안은 같은 무게로 평가할 수 없다.
■ 경계가 무너지면 과실책임의 처벌이 남는다
미필적 고의를 이렇게 넓게 인정하면 세 가지 결과가 따라온다. 첫째, 고의범과 과실범의 경계가 흐려진다. 사기죄에 과실범 처벌 규정이 없는 이상, 확인의무를 게을리한 사람을 사기죄로 처벌하는 것은 실질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과실 사기를 창설하는 일에 가깝다. 둘째, 편취액 전부에 대한 공동정범 책임이 연동되어 책임과 형벌의 비례가 깨진다. 조직에서 맡은 지위에 따라 역할을 세분화한 특성상 직접 실행에 가담하지 아니한 편취금액 전부를 그대로 양형인자로 삼는 것은 형평에 반하는 측면이 있다는 지적은 이미 나와 있다(광주지방법원 2020. 9. 22. 선고 2020노959 판결). 셋째, 무죄와 유죄가 사실심의 인상에 따라 갈리면서 예측가능성이 훼손된다. 실무상 현금수거책의 고의가 넓게 인정되는 편이라는 평가는 이 경향의 요약이다.
■ 결론은 개별적 심리로 돌아가는 일이다
필자는 대법원이 제시한 종합적 고려요소를 부정하지 않는다. 다만 그 요소들은 인식의 가능성을 재는 자료이므로, 법원은 한 걸음을 더 내려가야 한다. 첫째, 피고인이 각 행위 시점에 무엇을 인식하였는지를 업무의 이례성과 범행 가담 가능성으로 나누어 특정할 것. 둘째, 인식된 위험을 용인하였다고 평가할 수 있는 적극적 사정, 예컨대 문서 위조에의 관여, 타인 개인정보의 사용, 의심을 확인한 뒤에도 지속한 정황을 별도로 증명할 것. 셋째, 조직의 기망과 정보 차단이라는 구조적 조건과 피고인의 연령·지능·경력을 심리에 반영할 것. 넷째, '알 수 있었다'는 서술로 '용인하였다'는 결론을 대체하지 않을 것.
변호인의 작업도 여기에서 갈린다. 억울함을 크게 말하는 대신 대화기록의 시각, 지시의 내용, 문서 취급의 태양, 보수 산정 방식을 시점별로 배열하여 어느 단계에서 무엇을 알았고 무엇을 알 수 없었는지를 기록으로 보여야 한다. 고의는 진술로 다투는 것이 아니라 시간과 정보의 배열로 다투는 것이다. 중대한 결과가 있다는 이유로 고의의 요건을 완화하는 순간, 형법이 지켜 온 고의와 과실의 경계는 사건마다 조금씩 물러난다. 필자가 이 글을 쓴 이유는 그 경계선을 다시 기록 위에 그려 두자는 제안에 있다.

